세상을 구했던 책

세상을 구했던 책 박인애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창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등불 앞에 마음은 만 리 밖을 내닫네.

새벽 3시, 방안 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기온이 떨어지나 보다. 여름내 시원함을 주던 마룻바닥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더운 건 참겠는데 추운 건 허리가 시큰거려서 참기가 힘들다. 아이 낳고 몸조리 못한 후유증이 이제 사 나타나는지 조금만 추워도 뼛속까지 시리다. 11월 초까지 중간고사라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리포트가 잔뜩 쌓여있는데 며칠째 진도가 안 나가서 째려만 보고 있다. 요즘은 시간이 일주일 단위로 흘러가는 것 같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고, 늦둥이 딸 뒷바라지 하고, 집안 살림에 단체 일까지 돕다보니 한 달에 한 번 신문사에 보내는 원고도 코앞에 닥쳐야 쓰게 된다. 하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한시를 서두에 올려 보았다. 신라시대 6두품의 집안에서 태어나 학문과 문장의 경지가 높았으나 골품제(혈통에 따라 신분에 제한을 두었던 신라의 신분 제도)로 인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당나라로 유학을 가야 했던 최치원(崔致遠)의 오언절구 시이다. 언뜻 읽어 보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듯 보이지만, 자신을 알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노래한 시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의 암울한 현실과 답답한 심정이 짙게 배어있다. 게다가 가을밤에 비까지 내리니 그 슬픔은 배가 된다.

아무리 똑똑해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최치원이나 그 시대에 살았던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만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자유의 나라라 칭송받는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 가운데도 신분의 벽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택사스는 멕시코와 국경이 가까워서 엘에이만큼이나 불법 체류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신분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불법이라는 주홍 글씨를 안고 산다는 것은 너무나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악조건을 참아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직도 지구촌 구석구석에는 말 못할 이유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사는 21세기 최치원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12살짜리 어린 아들을 당나라로 유학 보낼 수밖에 없었던 최치원의 아버지처럼 자식들만이라도 유학을 보내려는 기러기 부모들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시가 떠 오른 건 아마도 추방명령을 받고 힘들어하던 지인의 딱한 형편이 마음에 얹혔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부모들의 마음은 자기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 아이들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산다. 지인도 그랬을 것이다. 그 마음을 하늘이 읽으셨는지 다행히 대학에 다니던 딸은 오바마가 시행한 드림법안에 통과되어 미국에 남아 공부하게 되었고 지인은 신분이 해결 되지 않아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험한 일만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유배지에서 쓴 편지』는 내가 아끼는 책 중의 하나이다. 강진 땅으로 귀향을 떠나 유배 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이 두 아들과 형님, 그리고 제자들에게 쓴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한 부분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가지 밖에 없다." 라고 이르면서 세상을 구했던 책을 읽으라고 당부한다. 그가 말한 세상을 구했던 책은 실용의 학문인 실학에 마음을 두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열심히 읽으라는 뜻이다.

사람이 문자로 된 글을 읽는 행위를 독서라 한다. 독서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소설 디바이스(Social device) 시대에 접어들면서 웹 북이나 스마트 폰 등의 출현으로 독서의 형태는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하나 책의 형태에 상관없이 정보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독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통로이다. 독서라는 고도의 지적 활동을 통해 쌓은 지적 경험이 바람직한 가치관과 인생관을 형성하기 때문에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려면 독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독서는 바로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직접 가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는 문화들을 독서를 통해 습득함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인류애를 키워 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요즘 한국 사회에서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글로벌(global)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근간 주변 사람들로부터 똑똑해진 것 같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독서 덕분이다. 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편식만 하던 독서 습관을 버리고 과목마다 요구하는 여러 장르의 책을 읽다보니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는 것 같다.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보면 갑자기 스스로가 기특해 울컥할 때가 있다. 그 다음날 초저녁부터 퍼질러 자서 남편 밥을 굶기는 게 탈이긴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너그럽게 봐주는 고마운 남편 덕에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늦깎이 학생은 행복하기만 하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책을 구하는 일이다. 이렇게 공부할 줄 알았다면 한국에 있을 때 갖고 있던 문학책을 모두 가지고 오는 건데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좋은 책들을 두고 온 것이 너무나 아쉽다. 그래도 지난 3년간 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책을 구했다. 한국에 사는 지인에게 책 리스트를 보내어 중고서적을 많이 구했고, 구할 수 없는 것은 새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내 책장에 소설이 250여권, 시집과 수필, 외국문학까지 천여 권이 되니 스스로 ‘박인애의 서가’라 부르며 뿌듯해 한다.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교수님들께서 수업시간에 권장해준 좋은 도서를 읽으며 나는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행복에 빠진다.

올해 가장 기뻤던 일은『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을 쓰신 김승옥 선생님을 만나 뵌 일이다. 미국에 올 때 악착같이 챙겨온 책 중의 하나가 그분의 책이었다. 올해 미주문학캠프에 그분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열일을 마다하고 그 책을 들고 미주문학여름캠프에 참석했다. 선생님을 만나 뵙고 종이가 노랗게 변해버린 내 책에 친필사인을 받아왔다. 요즘 아이들이 연예인 사인 한 장에 목숨을 거는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문학의 변방이라 불리는 미국 땅에서 존경하는 신달자 시인님, 이정록 시인님까지 만날 수 있었던 2013년은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다.

미국 시립도서실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중고 책 세일을 한다. 그 때 가면 한국 책을 간혹 건지게 되는데 운이 좋은 날은 절판되어 나오지 않는 책도 구할 수 있다. 이번 북 세일에도 줄을 섰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외국 책 섹션으로 달려가 한국 책을 찾아보았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다 했던가. 최인호 선생님의 상도 5권에 구효서, 양귀자, 박완서, 권정생.... 그 귀한 선생님들의 책들을 한권에 단돈 일불씩 주고 마구 담아왔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책을 계속 겹쳐 놓는 게 딱했는지 남편이 조립식 책장을 사다가 짜주었다. 딸내미가 엄마 방은 도서실 같단다. 종이 책을 넘기는 기쁨은 아는 사람만 안다. 읽을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지도 아는 사람만 안다. 책이 내겐 큰 재산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보고 아무래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단다. 아마도 남편의 외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보답으로라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야겠다. 나이는 숫자라고 매일 떠들고 다녔는데 요즘은 나이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마음을 따르지 못하니 말이다. 머리 좋아진다는 보장만 있으면 총명탕이라도 한재 달여 먹고 싶은 심정이다.

가을이다. 책이 있는 가을은 더 아름답다. 세상을 구했던 책은 아니더라도 나보다 먼저 쓰신 훌륭한 문인들의 양서를 읽으며 마음의 지평을 넓혀본다. 나도 좋은 글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 할 수 있을까?

- 에세이문예 2013 겨울호 수필 신인상 당선작 -

(당선소감)

2013년을 보내는 끝자락에 기쁜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쁘고 행복합니다.

글을 보낼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제가 써 놓은 글이 만족스러웠던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써 놓고 나면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아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우님들의 등단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면서도 정작 제 것에는 욕심을 부리지 못했습니다. 잘 써서 준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하라고 주신 상이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스코리아에 진에 당선이 되어 소감을 말하라 하면 예쁘게 낳아주신 부모님부터 미용실 원장님까지 줄줄 이름을 대면서 감사를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매년 똑같은 인사를 녹음기처럼 되풀이 하는 걸까?’ 하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게 당선소감을 쓸 기회가 주어지니 저 역시 고마웠던 분들 생각이 먼저 나네요.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봅니다.

물심양면으로 외조를 아끼지 않는 남편, 엄마를 이해해 주는 고마운 딸 예은이,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경희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글을 쓰도록 길을 열어준 인실언니, 공부하는 나이는 따로 없는 거라며 도전을 준 오 선배, 부족한 사람을 믿고 지면을 허락해 주셨던 신문사 사장님, 가족 같은 달라스한인문학회 문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뭐하려고 그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느라 생고생을 하냐는 소릴 자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훌륭한 사람 되려고요.”하며 너스레를 떨지요. 글을 써서 훌륭한 사람이 될 자신은 없지만 좋은 수필가가 되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저에게 수필가란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쓰는 자의 고통이 읽는 자의 행복으로 남을 때까지”라고 말씀해주신 이외수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문인이 되겠습니다.

Previous
Previous

씨 없는 수박